연극영화입시/뮤지컬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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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연기, 연극영화입시 <너무 놀라지 마라> 박근형 作

효진T님 | 2020.01.21 13:43 | 조회 83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연출 박근형)에는 한 가족이 있다.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내, 시동생이 그 구성원이다. 시동생(김주완 분)은 지독한 변비 환자로 어떤 약을 먹어도 듣질 않는다. 먹는 것은 맛살 뿐이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인데다 하는 일의 대부분은 쓰레기통을 안고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일을 보는 것도 아니지만.

아내(장영남 분)는 별 성과 없는 영화감독 남편(김영필 분)을 대신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가장인 아내는 밤마다 취해 들어오고, 그녀의 퇴근길에는 귀찮은 남자 손님이 들러붙기도 한다. 남편은 현장에서의 감독의 필요성은 지나치게 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집안에서의 자신의 필요성은 잊어버렸다. 집에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의 아내에게 다 맡겼다. 아주 정확히는 넘겼다.
 
어느 날 시아버지(이규회 분)는 손톱과 발톱을 깨끗이 깎고 정장을 한 뒤 목을 매어 자살한다. 장소는 환풍기가 고장 난 조그만 화장실. 작은 아들이 매일 쓰레기통을 안고 낑낑거리는 배설의 욕망이 가득한 그 장소에서 아버지는 죽는다. 
 
놀랄 수밖에 없는 이 상황 앞에서, 화장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의 시신을 보는 가족들은 지나치게 태연하다. 놀라지 말라는 마지막 말이 무색해질 만큼 아무렇지 않다. 
 
"죽음 앞에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밝게가시니."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생전보다 사후가 차림이 말끔하고 얼굴도 보기 좋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아버지는 힘들 때 오히려 얼굴이 핀다며 지금 아버지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망발도 오고간다.

이들은 이렇게 아버지의 죽음에 애도보다, 무관심과 귀찮음을 표한다. 누구도 시체를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환풍기가 고장나 냄새가 난다고 불평이다. 시동생은 볼 일을 보려고 용을 쓰다 아버지의 다리를 붙들고 낑낑거리기도 한다. 이들은 이토록 지나치게 무심해, 그 풍경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은 일그러진 한 가족의 초상이다. 서로에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고, 평범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놀라운 가족의 초상이다. 그저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깊은 이들 마음의 상처는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에게는 집나간 아내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소복을 입고 울고 있는 악몽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끊는다. 시동생에게는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는 피고름이 맺혀있다. 배설할 수 없는 기억과 욕망과 애정이 그의 몸에는 꿈틀거린다. 형수에게 잘못된 애정과 집착이 이어진다.
 
모든 것이 극단적이고, 평범한 것이 모두 뒤틀려있다. 상처받았으며, 계속 상처받고, 위로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집이라는 공간 안에 뒤섞여 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이 모습은, 우리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이 시대 어딘가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소시민의 이야기다.
 
박근형 연출이 의도한 '아버지도 없고, 인륜도 없는, 말도 안되는 세상'은 온전히, 어쩌면 아주 완벽히 이 무대 위에 재현되었다. 작품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태연히 꺼내놓으며, 중간 중간 희극적 요소를 가미했다.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거리기도 하다, 곧 자세를 바로잡고 언제그랬냐는 듯 눈쌀을 찌푸린다.

이런 구성과 더불은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세상에 찌든 가슴 때문에 시든 장미가 되어버린 아내, 이상에 젖어 혼자만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버린 남편, 숨이 넘어갈 듯 신음하나 그 어느 것도 배설하지 못하는 시동생, 그리고 내내 천장에 매달려 내려달라 소리치는 시아버지. 이들은 당장 무대로 내려가 등을 다독여주고 싶을 만큼, 실제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인양 현실감 있게 표현된다.
 
무관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도 그저 평범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은 있었다. 시동생은 중얼중얼 꿈같이 흐려진 옛날을 이야기한다. 마호병을 들고 한복입은 엄마와 창경원을 갔던 그 날을. 형과 아버지가 돗자리 깔고 앉아 사이다에 김밥을 먹던 그 순간을.
 
무대 위 이 가족의 인생은 언젠가 한 번 쯤은 '평범한 순간을 누렸을'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작품이 제목이 놀라지 말라하더라도 놀라도 좋다. 다만,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사람들이 있어!'하고 놀라지만 말고, '어쩌면 저토록 현실적일까!'하고 놀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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